[쉬어가기] 윤희상 시집 中 도너츠

도너츠 - 윤희상

눈 내리는 날,
한 가운데 텅 빈 마음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스산한 바람만 불었다
비움으로 끝내는 남아 있는
중심의 괴로움을 처음에는 몰랐다
중심은 사라지고
주변으로 드러나는 풍습이 그만큼 낯설다
그렇다고, 마음이 갇히지는 않았고
열리지도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다 먹혔을 때만
둘이 서로에게 고요히 번진다
안과 밖이 서로에게 스민다
둘이 다투지 않는 고즈넉함이다
너와 내가 하나이듯이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이
밤과 낮이 하나이듯이
마치 정신과 육체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듯이
그대로 하나의 몸이다
그리고, 흩어진다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낮은 곳으로 향하며

가운데가 뚫려있는 도너츠의 모형과 텅 빈 마음자리는 같지만 다른 느낌이다. 쉬운 언어에 담긴 말의 비밀을 무엇일까. 특히, 빈 공간과 절제를 통한 여백의 미. 그 텅 빈 공간으로부터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눈 내리는 날, 눈 처럼 마음의 한 구석이 낮은 데로 향한다. 혹은, 어쩌면 빛과 어둠, 낮과 밤이 그러하듯 낮은 곳으로 향하며 동시에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는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임종'의 순간에는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와 너'의 하나임, '나 없이 너 없고, 너 없이 나 없다.'

알고 보면 서로가 하나인 것처럼 연결되어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서로를 무시하고 싸우며 살아가는 걸까. 시인은 아마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모두가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볼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도너츠 처럼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을 통해 사유하고 그 사유를 통해 얻어진 자신만의 철학을 시에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유는 우리에게 즉각적인 공감과 더불어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이 시를 통해 서로가 하나임을 깨닫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외로움의 연속인 삶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가운데 무언가 뻥 뚫린 도너츠는 현대인을 의인화한 것 같다. 서로 마주할 수 없는, 마음을 나누는 깊이 있는 소통이 단절된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 말이다. 비로소 없어져야만 하나로 스며들 수 있는 관계가 떠오르니 마냥 씁쓸하다. 이처럼 이 시를 읽고 나면, 누구나 서로 마주할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서로 마주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은 결코 답답하고 씁쓸하지만은 않다. 사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끌리고 있다. 이러한 끌림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관계는 더욱 깊어져, 서로의 마음이 한 곳에 모여 하나로 스며들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책이다. 그 마음을 떠올리고, 재인식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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